백신 3차 접종기

2022. 2. 4. 23:15journal

2차 접종 후 90일 넘었다고 안내 받자마자 3차 접종 예약을 마쳤고, 그 날이 오늘이라 주사 맞고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운 채 졸면서 적어보는 백신 3차 접종기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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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약일 하루 전인 어제는 3차 접종을 하고 뇌졸중인지 뭔지로 어떻게 됐다는 저 옛날 오디션 프로 아이돌 그룹 출신 아무개의 기사가 떴는데, 그 기사를 보고 3차 접종을 맞지 말라는 둥 호들갑을 떠는 남편에게 말로는 “으이그- 아무 일 없을거야” 했지만 사실 ‘설마 나에게..?’ 하는 걱정이 조금은 있었다는 걸 고백한다.

‘미디어가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소수의 사례만을 대서특필하며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’고 생각하고는 있지만, 어쨌든 나 역시 부지불식간에 내 마음을 파고드는 그 ‘조금의 걱정’을 극복하는데 나의 에너지와 신념을 써야하기 때문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애쓰지는 않기로 했다. 다행히, 무서운 기사들만 골라 읽으며 호들갑 떠는 남편도 술 약속을 나가기 위해서 추가 접종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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옛날부터 주사 맞는다는 사실 자체에 겁을 먹는 편이라, 막상 주사바늘이 들어간 순간부터는 사실 뭐 그렇게까지 죽을만큼 아프고 괴롭고 못 견딜 일이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, 지금부터 1초 후에는 주사실에서 멋적게 웃으며 걸어나올 걸 아는데도, 꼭 오만 난리 블루스를 추게 된다.

그런데 언젠가 회사 길 건너편 내과에서 채혈을 했는데 간호사 한 분이 진짜 바늘이 들어왔다 나간줄도 모르게 (무려 피 뽑는 주사인데도!!!) 기가 막히게 주사를 놓으시는게 아닌가! 정말 내 평생 가장 대단한 능력자셨다! 어찌나 순식간에 샥 놓고 빠지는지 엄살을 부릴 시간도, 멋적어할 시간도 없었다. “주사 진짜 잘 놓으시네요” 하고 감탄했더니 그런 인사를 듣는게 처음이 아니라는 듯이, 하지만 예의바르게 웃으시며 고맙다 하신 그 분을 떠올리며 백신휴가도 포기하고 회사 앞 내과에 예약을 했는데, 막상 예약일이 되어 생각해보니 백신 주사는 간호사가 놓아주지 않는다.

앞선 두 번의 백신 주사를 맞았던 집 앞 병원에서는, 주사를 손에 쥐어본지 30년은 됐을 것 같은 고령의 의사 선생님이 진짜 장탄식을 뱉을만큼 아프게 주사를 놓았었는데, 그나마 2차 때는 그새 경험치를 쌓으셨는지 좀 덜 아파졌길래 ‘3차 때 또 찾아가면 더 잘 놓으시겠지’ 생각하고 있었는데, 나는 왜 회사까지 나와서 처음 보는 의사에게 백신 주사를 맞으러 가고 있는 것인가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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게다가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하필 새로 시작 된 무슨 신속항원 검사인지랑 해외 출국용 PCR 검사를 받으러 온 20-30여명의 대규모 인원이 시장바닥 같은 분위기를 연출 중이라 나의 두려움은 더욱 증폭됐다.

대기실 수용 인원이 훨씬 웃돌아 안전거리 확보도 안 되는데 이 중에서 양성이 나오진 않길 바라며 괴로워 하던 그 때 내 이름이 불리고, 진료실에 들어갔을 땐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원장쌤이 계셨다.

저 분의 주사 레벨은 몇일까 의심하며 “아아 선생님 안 아프게 놔주세요오오오 으아아아파아아아” 하고 있는 나에게 젠틀하게 웃으시던 원장쌤은 하이레벨이었어서 사실 그렇게까지 아프진 않았고, 나는 결국 멋적게 진료실을 나왔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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침대에 누워있는 지금 다행히 별로 이상은 없는 것 같고 그냥 팔이 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.

몇 번째 백신을 맞아야 이 모든 게 평범한 일상이 될까. 올해로 코로나 3년, 이번 새해는 무언가 다르길 조용히 기대해 본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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